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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비통제

손실 회피와 이익 획득, 군비통제

by 이구루 2024. 3. 30.

 

손실 회피와 이익 획득

 

대니얼 카너먼에 의하면 우리는 이익 달성보다 손실 회피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손실이고, 목표를 넘어서면 이익이다. 그래서 목표 달성에 실패하지 않으려고 회피하는 성향은 목표를 초과 달성하려는 욕구보다 훨씬 강하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경제학자 데빈 포프와 모리스 슈바이처는 골프의 파 퍼팅과 버디퍼팅을 손실 회피와 이익 획득의 좋은 사례라고 생각했다. 골프코스에는 홀마다 타수가 있다. 파의 수는 괜찮은 수준의 기준을 제시한다. 프로골프 선수라면 버디(파보다 1타 적을 때)는 이익이고, 보기(파보다 1타 많을 때)는 손실이다. 경제학자들은 골프 선수가 홀 가까이 왔을 때 마주할 상황 두 가지를 비교했다.

 

­ - 보기를 피하는 퍼팅

 - 버디를 잡는 퍼팅

 

골프에서는 모든 타가 중요하지만 특히 프로골프에서는 모든 타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 중에서 버디를 놓치면 손실이 아니라 놓친 이익이지만 파를 달성하지 못하면 손실이기에 파 퍼팅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두 학자는 손실 회피 성향을 기초로, 선수들은 버디퍼팅을 할 때보다 (보기를 피하려는) 파 퍼팅을 할 때 좀 더 공을 들일 것이라고 추론했다. 이들은 250만 개 이상의 퍼팅을 정밀 분석해 점검했다.

 

분석결과 이들이 옳았다. 퍼팅이 쉽든 어렵든, 홀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든, 선수들은 버디 퍼팅보다 파 퍼팅을 할 때 성공 확률이 높았다. 파 퍼팅과 버디 퍼팅의 성공률 차이는 3.6퍼센트였다. 사소한 수준이 아니다. 연구대상에는 타이거 우즈도 끼어 있었다. 한 타로도 평균 토너먼트 점수가 올라가고, 수입은 시즌당 거의 100만 달러가 올라갈 수도 있었다.

 

군비통제 협상이나 노사 협상, 무역 협상에서도..

 

상대가 내게 양보한 것은 내게는 이익이지만 상대에게는 손실이다. 따라서 상대는 내게 기쁨을 준 것보다 더 큰 고통을 맛본다. 그래서 상대는 그 양보에 나보다 더 높은 가치를 둔다. 물론 상대가 내게 요구한 양보도 내게는 대단히 고통스러운데 상대가 그것에 매긴 가치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고통스러운 양보를 제시할 때는 상대에게도 똑같은 고통스러운 양보를 요구한다. 이러한 심리적 성향을 미국과 소련이 합의한 중거리핵무기감축(INF) 조약에서 살펴보자.

 

중거리핵무기감축 조약 협상

 

1970년 중반 이전에 유럽의 소련에 대한 안보 우려는 크지 않았다. 소련이 배치한 미사일은 사거리 2~4천 정도이고 정확도도 부족한 SS-4SS-5 미사일이 주를 이루었다. 따라서 나토는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유럽 대중들도 위협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는 상태였다. 미국도 감시 자산의 활용으로 조기 경보가 가능하고 공격 징후 발생 시에는 선제공격으로 제압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유럽은 토르와 주피터 미사일(사거리 2.5km)로 대응하고 있었다.

 

70년대 중반 이후 소련이 유럽 대륙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SS-20 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하였다. 사거리는 향상되어 약 5km, 정확도도 향상되었고 탄두 3발은 개별적으로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었다. 또한 고체 연료를 사용하고 이동형 발사대를 사용할 수 있어 위협적이었다. 서유럽에 배치되었던 미국의 핵미사일이 '62년 철수하면서 핵미사일 부재로 유럽의 안보 불안은 고조되었다. 미국은 이러한 나토의 안보 위험에 대응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서독의 슈미트 총리는 유럽의 안보 위협을 공론화하고 미국의 핵 억지력 보장을 촉구하였다.

 

미국은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퍼싱II 미사일과 지상발사순항미사일을 배치하기로 결정하였다. 지상발사순항미사일은 퍼싱II 미사일보다 사거리(2.5km)가 길고, 정확도가 높으며, 관찰하거나 차단하기 어려운 경로로 비행하였기에 소련에 위협적이었다.

 

미국은 이러한 미사일의 배치 결정과 동시에 가능한 한 미사일의 전력을 가장 낮은 수준으로 감축하는 군비통제 협상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최종 협상 결과 미국과 소련은 제기된 SS-20 미사일과 퍼싱II 미사일, 지상발사순항미사일 등 모든 중거리 미사일을 폐기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이행하였다.

 

전략적 이익과 손실

 

손실 회피와 이익 획득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소련은 SS-20 미사일 배치를 통해 전략적 이익을 획득하려 하였고, 미국은 피싱II 미사일과 지상발사순항미사일을 배치하여 유럽에서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이에 소련은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받아들이기 힘들고 미국과 소련이 군비통제 협상 개시 전에 미소 양국의 무기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원칙을 벗어나는 영국과 프랑스의 핵무기도 협상 대상에 포함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미국이 이에 응하지 않고 퍼싱II와 지상발사순항미사일의 배치 계획을 실행하였다.

 

협상 과정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핵무기는 물론 협상 초반부터 주장해 오던 미국의 항공기도 협상 대상에서 양보하고 소련이 조약에 최종적으로 합의한 것은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II)으로 서방과 전략적 균형이 유지되어 양보하더라도 손실도 회피할 수 있다고 판단한 심리적 요소가 작용하였다. 파 퍼팅은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국도 소련과 마찬가지로 전략무기제한 잠정협정(SALT I)에서 동등하게 제한하지 못했던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수량적으로 균형을 유지하여 전략적으로 동등하거나 기술적인 면에서 전략적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전략적 손실을 회피하면서 중거리핵미사일을 모두 제거하는데 합의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소련 쌍방은 자신들의 양보가 고통스러운 만큼 서로에게 더 큰 양보를 요구하면서도 최종적인 이익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소련은 귀중한 SS-20 미사일을 잃는 손실을 고통스러워하면서 그 대가로 미국이 고통스러워할 순항미사일의 제거를 요구하였다. 이에 미국은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 등 전 세계에 배치된 모든 소련의 중거리 핵미사일의 제거를 요구하였다. 내가 받은 고통은 상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기에 더 많은 고통을 상대에게 요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