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역사를 창조한 군비통제의 역사
전차와 전투기 그리고 화포 등을 폐기하고, 적대국 하늘을 날며 영토를 감시하며 대규모 군사 훈련이 있으면 적대 국가에 초대되어 군사훈련을 참관한다. 또한 자기 나라가 보유한 무기와 병력현황을 상대방에게 통보하고 새로운 무기가 만들어졌을 때는 그 기술 제원을 적대국에 제공한다. 이것이 90년대에 상호 적대적이었던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합의한 군비통제 조약들의 주요 내용이다.
그리고 이에 앞서 미국과 소련은 전략핵무기를 제한하고 감축하기 위한 조약에 합의하고 이를 이행하였다. 심지어는 중거리 핵 미사일은 모두 폐기하였다.
이러한 군비 통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다 보니 새로운 개념도 탄생했었다. 전략핵미사일로 상대국을 공격하려고 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공격받은 상대방이 공격받은 후에 어떻게 반격할 것인가이다. 만약에 심각한 반격이 예상되고 오히려 공격한 것보다 더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면 아예 처음부터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따라서 대규모 미사일을 막을 능력이 없다면 애초에 먼저 기습공격을 감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하게 되었고 이 개념 아래 서로 방어 능력을 최소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협상하여 조약에 협의하였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조약이 탄도탄 요격 미사일 제한(ABM) 조약이다.
전쟁과 사라지는 군비통제 조약?
냉전 이후에 핵무기가 사용될 위험이 가장 높은 상황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러시아는 재래식 무기로 공격하는 과정에서 예상 밖의 고전을 하게 되자 핵을 사용할 가능성을 언급하였고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배치하고 공동으로 관리하며 우크라이나는 물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국가들도 위협하였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며 2002년에 미러 양자 탄도탄요격미사일 제한 조약을 미국이 탈퇴하면서 군비통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2019년에는 미국이 미러 중거리핵감축(INF) 조약에서 탈퇴하고, 러시아가 2023년 11월에는 유럽재래식무기감축(CFE) 조약에서 탈퇴하며 미러 양자 협정의 해체가 가속화되었다.
여기에 이어 2023년 11월에 러시아는 미국의 러시아 내 핵무기 시설의 사찰을 거부하며 신 전략무기감축조약 (New START)의 이행 중단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핵무기와 관련한 정보교환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조약에 규정된 배치 핵탄두 제한수량인 1,550발은 준수한다는 입장이다. 조약은 2026년에 만료 예정이지만 현재 두 나라 간의 적대적 입장으로 인해 후속 조약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지 않아 향후 핵무기에 대한 군비통제 전망이 어둡다.
한편, 핵 비확산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핵비확산 조약(NPT)이 있다고 하나 가장 최근의 2022년 NPT평가회의에서 합의를 채택하지 못하였다. 주된 이유는 우크라이나 원전시설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 점령 및 안전조치 단절과 핵보유국의 핵군축 노력의 부재에 대한 비핵국의 불만이었다. 여기에다 러시아는 핵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위협까지 하여 핵보유국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었다.
포괄적핵실험금지 조약 (CTBT)에는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서명하였으나 주요 국가들은 비준하지 않아 발효되지 못하고 있다. 해당 국가에는 중국, 인도, 이스라엘, 북한, 파키스탄, 미국이 포함된다. 이러한 가운데 2000년에 비준한 러시아가 2023년 11월 서명만 하고 비준하지 않는 미국을 지적하며 비준을 철회하였다.
핵무기를 금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암울한 상황 전개에도 불구하고 다자간 군비통제에 대한 밝은 전망이 하나 있다. 핵무기금지조약 (TPNW)에 대한 협상과 채택, 그리고 발효로 핵감축에 대한 새로운 다자간의 군비통제 체제 구축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금지 조약은 핵비확산 조약을 보완하고 조약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틀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핵무기의 확산을 방지함과 동시에 근본적으로 핵군축을 실현할 수 있다.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가입할 경우에는 보유한 모든 핵무기를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계획과 모든 필요한 검증체제에 따라 폐기하는데 동의하여야 한다. 그리고 타국의 핵무기를 자국에 배치하고 있는 국가는 구체적인 시간 계획에 따라 핵무기를 제거하는데 동의하는 경우 조약에 가입할 수 있다.
핵무기금지조약의 뿌리는 핵무기의 비인간적 영향에 대한 국제적 구상에서 출발하였다. 핵무기를 금지하는 국제 조약에 대한 아이디어는 핵무기가 폭발할 경우에 발생할 가공할 규모와 방사능 낙진의 심각한 피해의 지속성이 매우 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무차별적인 무기라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2024년 1월 현재까지 조약의 서명국은 93개국이며 70개국이 비준하거나 동의하였다. 2021년 발효된 이후로 점점 확산되고 있다. 전 세계 국가의 절반 이상이 서명하거나 완전히 비준하기 직전이다. 이러한 조약의 성공은 부분적으로는 호도된 핵억제 이론의 거부에서 출발하였고 또한 핵무기가 인류의 건강과 환경에 가하는 피해의 인식에 근거한 핵 정의에 대한 어젠다의 추진 덕분이다. 일본 핵폭발에서 사망한 215,00명의 인명 피해 외에 러시아와 미국, 기타 핵무기보유국이 행한 2,000번 이상의 핵무기 실험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하게 토양을 오염시켰으며 거주민의 건강에 세대를 걸쳐 피해를 입혔다.
TPNW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처럼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한 것은 오히려 핵억제 이론을 무력화시킨다는 점에 대해서 지적하였다. 핵억제 이론은 핵무기 보유국들이 상대방의 공격을 예방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위협을 통해 상대방을 제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 사용의 위협은 이러한 핵억제 이론을 무력화시키며, 국제사회의 안정과 안전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이상 핵억제 이론은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핵무기 폐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TPNW 회원국들은 핵무기 사용의 위협을 규탄하고 있고 전 지구적 토양 등 환경과 보건에 가해지는 피해 등을 주장하며 반윤리적인 면을 부각하며 핵보유국들을 비판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거의 대부분의 핵무장국가들은 생물 및 화학무기 금지 협약에 가입함으로써 대량살상무기의 불필요성과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따라서 무차별적이고 지속적인 피해를 일으키는 무기는 제거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핵무장국가들은 이미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NPT의 핵보유국들은 이미 핵군축 의무와 국제 인도주의 법을 준수할 것을 받아들였다.
핵무기보유국이 전적으로 TPNW를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시작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프랑스가 NPT를 받아들이는 데 20년 이상이 걸렸다는 점을 상기하며 전 인류를 공멸할 수 있는 핵무기를 금지하는 조약을 추진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며 지속적으로 추진하여야 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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